중년파산 각종 감상

 <노후 파산>이라는 제목의 책이 서점의 매대를 장식했던 기간이 기억난다. 청소년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의 애환을 죽도록 견딘 중년이 지나고 나면, 내가 번 돈은 내 생활에 그리고 자녀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된 노후 시절이 되면 할 일도, 뭔가 할 수 있는 재원도 남게 되지 않는 불행한 인생을 조명한 듯 했다. 하지만,

 <중년 파산>

 어쩌면 이것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후를 맞이하기 전에 이미 중년부터 위기가 오는 시대가 왔다. 청년 시절은 절박하게나마 주변에 있는 ‘중년’ 어른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중년’마저 세상에서 버티기 힘든 시절이 온 것이다. 학력이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문제가 생긴다. 고학력으로 인생을 끌어올리는 시절은 지났다. 책에서는 이 젊은 층의 파산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에 그 원인을 많이 두고 있다. 한정된 일자리에 모여드는 구직자들, 부모의 ‘파산’으로 절박해진 세대들의 열악한 환경으로의 반(half) 타의적인 취업, 비정규직이나 경제적 약자들의 무능력을 지탄하는 시선, 청년세대(자녀)의 지원을 위한 제2의 취업, 경력의 공백에의 비난......

 내가 이미 ‘약자’이다보니 다른 ‘약자’를 배려하기 보다는 배려받기 위한 순위싸움을 하는 사회적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집단이 받는 호의에 반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가 약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 감정이 더욱 격화된다. 그러다 보니 ‘나만 살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더욱 강해진 것이 아닌가. 이럴 때 나의 ‘약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명해주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요구하는 글들은 중년, 청년 세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계발서가 희망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자기를 채찍질하는 책을 읽고 스스로를 재정비해서 집을 나서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초점이 ‘개인’에서 ‘사회’로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은... 모두가 다 평등한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모두가 비슷한 기회를 가지고, 비슷한 부를 축적하는 게 가능한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체념하게 된다면 그저 허무주의자로 머무르며 사는 것이 답일까? ‘미니멀리스트’의 사치를 포기하고 ‘히키코모리’로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삶을 연명하며 살아아만 하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결국 서로의 기회를 뺏고,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상황은 모두 ‘약자’사이에서 일어난다.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얘기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파산’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일어나는 난투극 같은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강자는 이미 링 밖에 있고, 링 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기들끼리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후진 장비를 메고 싸움에서 진 사람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링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을 비난해야 하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타인을 무참히 짓밟는 승자를 비난해야 하나? 아니면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자리에 있는 ‘링’을 탓해야 하나? 이상적으로는 ‘링’을 없애버리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것을 없애는 것이 가능한가?

 한 세대에서 해결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세대를 거치면서 링이 넓어지든, 싸우지 않아도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생기든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젊은 세대는 희생을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살아있는 동안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가 똑같은 문제를 겪지 않도록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는 허무주의에 찌든 무기력자로 살지 않겠다고, 지금 참고 살지만 내가 죽을 때 쯤에는 조금은 사회가 바뀌길 바란다고 계속 얘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