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갈 때마다 읽어볼까, 말까를 늘 고민하게 만들었다. 제목은 친근한데, 서점보다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먼저 알았던 책이라 혹 '광고빨'에 속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외면했었다. 그러다 중고서점에 갔더니 책장 한 쪽에 조용히 꽂혀있는 이 익숙한 제목을 보고 후다닥 집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심보였을까. 요즘 SNS나 동영상을 통해서 책 내용의 일부를 전달하는 서비스가 많은데 난, 그런 서비스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사람입장에서나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나 모두. 출판사에서는 '혹'할 만한 문구를 골라서 책을 어필할 것이고 그 어필에 끌려간 독자는 책에서 전혀 다른 내용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그 '혹'할 느낌을 찾아서 밋밋하고 건조한 풀숲을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고.
아무튼 대략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광고하는 '익숙한 새벽 세시'는 마치 고요하고 평온한 새벽이 상품화되어 시끄러워지게 될 것 만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에 나라도 읽지말자는 이상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금방 집어 든 건, 사실 나도 여러 마케팅에 '혹' 해왔다는 반증?
어제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해 오늘 오전에 잠시 식탁에 앉아 끝까지 읽어냈다. 음악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본인이 생각하고 느끼신 바를 상큼한 언어로 잘 풀어내고 있다. 상황별로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충분히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공감이 잘 된다라는 것은 아마도 책을 읽고 작은 응원을 받을 만한 사람도 많다는 얘기겠지?
그리고 작가가 더 화려하고 유치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어하는 열정을 조금 느꼈다. 그 것이 너무 날 것 그대로 드러나지 않게 절제한 것도 느꼈다. 그런 것들이 느껴질 때면 '이 글을 쓰는 게 이분에게 '일'이 었구나.'라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마구잡이로 일기쓰듯 써낸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배려해서 쓴 글. 그런 생각들 때문에 이렇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모든 글에도 사실 누군가의 엄청난 감정의 일과 지구력이 필요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애써서 책을 쓴 작가분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내 코가 석자인 처지에 할 말은 아니지만 '걱정하고 고민하시던 글 쓰는 일, 그래도 잘 되어가는 것 같아요'라며 얘기해주고 싶을 정도.
다만, 제목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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