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 연약한 일상


 부산에 살 때는 중고서점에 이렇게 열광하지 않았다.
 집 근처에 보수동이라는 보물창고가 있었으나, 그게 보물창고인 줄도 모르고 헌책방 속 몇몇 새책방을 찾다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남들이 보기 싫어 버린 책 인데 나라고 보고 싶겠냐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래도 손 때를 타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책 보다는 갓 코팅되어 나온 미끈한 기름냄새(?)가 나는 새 책이 더 좋았나보다. 어린 시절 책에 관한 희한한 결벽증으로 도서관에 비치된 책도 잘 보지 않았다. 남이 보다 남겨 둔 책이라서.

 그랬던 내가 요즘은 중고 서점에 열광하고 있다. 처음엔 책장의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그 곳에서 뺄 만한 책들을 손 쉽게 팔 수 있다는 즐거움에서 시작했는데, 내가 내 책을 팔다보니 중고 서점에 관한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깨끗하게 보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글이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는다. 그렇게 읽은 책들을 팔기 시작하니, 비슷한 독서 습관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흘러나온 소중한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이 중고 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쩌면 이건 다른 사람도 같은 결벽증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이기적인 나만의 작은 소망일 수도 -  제목이나, 한 문구에 매력을 느껴 구매하고 읽고 느끼다가, 한 동안 책장에 모셔놓고 생각의 변화에 따라 다시 시장으로 나온 책들.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를 주기 힘든 책이지만 이제 그 '의미'를 느낄 차례가 된 누군가를 위해 다시 서점으로 나온 책들. 그 책들에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새 책을 파는 서점에 가면 베스트 셀러부터, 서점 md의 추천, 누구의 추천에 의해 아무래도 책을 선택하는 데 다른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한다. 그 추천을 매번 외면하고 자의로만 책을 선택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하지만 중고서점에서는 모든 책들이 다 평등하다. 한 때 잘 나갔던 베스트, 밀리언 셀러도 오만 곳에서 추천과 찬양을 받았다는 화려한 띠지를 가진 책도 그저 작가명 순으로, 제목 순으로 진열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선택하는 건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오늘 몇 권의 책을 중고서점에 팔고 세 권의 책을 새로 구입했다. 읽고 싶었던 '새 책'인데 이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에세이 하나,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절대 손이 가지 않았던 두꺼운 교양서도 큰맘 먹고 하나, 마지막으로 늘 내가 그랬듯 제목에 홀려서 산 교양서 하나.
 책 팔러갔는데 늘 적자보고 온다며 남편이 놀려댔지만 이게 무슨 적자야. 내가 잘 읽은 책 팔아서 일부 보상받고, 누군가는 중간에서 마진을 챙기고, 또 나 같은 누군가는 보고 싶었던 책 저렴하게 사서 읽을 수도 있는 윈윈윈인데. 가끔씩의 중고서점 나들이가 이렇게 난 좋더라.




덧글

  • rumic71 2016/10/02 23:27 #

    전 중고로 산 책은 일단 알콜솜으로 닦아둡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인쇄잉크가 지워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 박구름 2016/10/04 11:07 #

    알콜솜으로요? 오... 책을 '닦는' 건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손으로 먼지만 탈탈 털었는데... 중고책... 저도 닦아서 관리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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