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하지 않는 연습, 구사나기 류순 각종 감상

 한 동안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라는 책에 심취되었다. 처음으로 나온 책도 좋았고, 후에 2편 격인 <<반응하지 않는 연습 - 실천편>>도 옆에 오래 두고 천천히 읽었다.  그 책의 영향으로  '언제 어디서 반응할지 모르는' 나는 좀 더 덜 '반응'하게 되었다고 자신한다. 

 <<반응하지 않는 연습>>에서 핵심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이다. 사람을 내 기준에 맞추어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는 옳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러한 '오만한' 판단으로 인해 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 자신 조차도 오늘 아침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내 기억속의 '그 사람'은 왜 그 당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즉,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은 약간의 시간만 지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그런 판단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 늘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편견없이 대하라는 것이다. 의미없는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늘 판단하려는 이유는 '다른 이를 재단한다는 우월감'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우월할 것도 없지만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는 판단을 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심정을 가졌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두 번째로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데 대부분의 바라는 마음은 '망상'에 가깝다. 실천하지도 않을 것이고 실현되지도 않을 망상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스스로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쓸떼없는 망상을 하지 말라. 늘 오감을 열어놓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라. 이 책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반응하지 말고 늘 평정을 찾자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 없이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는 그 다짐을 떠올리기 힘들다. 약간의 불쾌한 어투나 행동이 느껴지면, '오늘 아침의 나'와 다르기는 커녕 '수십년 째 똑같은 나'가 되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그러한 상대의 반응이 나를 목표로한 공격적인 행동이 아니며 상황상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참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나고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온갖 고상한 마음가짐은 다 가졌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오면 열에 아홉정도는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 중 다섯 정도는 그 마음을 표출했다. 

 정말 '반응'을 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누구든 만나면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일어나지 않는가. 늘 심심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피하는' 방법만이 떠오른다. 모르는 사람의 의미없는 눈빛이나 말투에,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생기는 소소한 감정들. 그런 것들을 피하면 피할 수록 내 마음 건강에는 좋은 것인가? 책의 저자도 이러한 이유로 스마트폰 사용을 최소화한다는 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스님'이고 나는 '일반인'이니까 스마트폰을 두고 외출이나 여행을 한다는 건 힘들 것 같다. 

 아무튼 반응하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수양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과연 반응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침묵으로 내 반응을 누그러뜨리고 숨기며 사는 것이 옳을까? 그런 침묵이 오히려 나의 무력함이나 무식함을 포장하는 행위가 되지는 않을까? 
 반응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 좀 더 집중하며 사는 것으로 결론 내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나 자신, 그 중에서도 오늘의 나, 현재의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그 것에 집중하며 사는 것으로 조금 바꾸어 해석하기로 했다. 애초에 '다른 이에게 반응하지 말자.'라는 말 자체가 타인에게 반응하고 있는 문장이다. 

오늘 하루 내가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데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