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에스더 헤르호프 기분대로, 책읽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라고 띠지에 적힌 소설들은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마지막에 갑자기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범인이 밝혀지든, 범인이 하고자하는 바가 실패로 돌아가든) 1-2장 이내로 책이 끝난다. 그리고 그 뒤로 남겨졌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아주 오래 전, 어린이 시절에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입었다. 그 충격은 후반부에 화자의 고백과 후일담등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봐! 이게 결말이야! 충격적이지!'하고 끝내버린다.

 

 이런 구성을 볼 때마다, 이건 '악'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고, 듣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악인에 의해 희생된 생명들보다는 악인이 왜 그랬는지, 특히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더 정성스럽게 기술한다.

 <악연>에 드러나는 헤네퀸의 방식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의 주된 줄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데, 뒷부분에서 드러나는 헤네퀸에 대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헤네퀸의 방식은 그저 '자극'을 위한 행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거부감이 든다. 그 자극이 소설 내부 인물들을 향한 자극이 아니라, 독자를 향한 것 같아서 조금 불편했다.


 확실히 이런 스릴러 소설들은, 점점 그 자극의 강도가 조금씩 조금씩 심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들 대표적으로 '모성애' 같은 것이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닥치는 대로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하는 헤네퀸의 이런 속도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이는 게 그 여자의 모습이라면 이 책의 제목은 <악연> 보다는 <조커>같은 종류가 더 낫지 않았을까. 납득되는 이유도 없이, 그저 자기를 위해 죽이고, 거추장 스러우면 죽이고... 그녀와 디디의 '악연', 그녀와 다른 죽은 사람들의 '악연'이 아니라, 그냥 헤네퀸이 <악인>인걸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다.


 차라리 마지막의 그런 상황 설명따위가 없었다면 '악인'으로서 헤네퀸이 완성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죽였고, 저래서 내가 이러고 있고를 설명하려고 하다보니, 그 두꺼운 책장 속에서 묘사되었던 헤네퀸이 종이인형처럼 힘없이 고꾸라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더 불편했던 건.. 이게 화자가 계속 바뀌는 형식인데, 번역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인지... 예를 들어 디디가 화자인 부분에서 본인을 '디디'라고 칭하기도 하고, 또 '나'로 시작하는 문장이 혼재되어있어 몰입을 약간 방해했다. 몇몇 장에서는 전지적 시점과 1인칭이 혼재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이게 의도된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으면서 좀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스릴러는... 읽으면 찝찝하고 딴지를 걸고 싶은 곳도 많이 생기는 데, 그래서 그런지 계속 읽게된다-_- 하지만 자극을 위한 자극 소설, 그 '자극'의 농도는 더 진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봄이 왔나보다 바보같은 생각, 일상



다음 번에 이사갈 때는 꼭 텃밭이 있는, 마당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다.
봄마다 짧은 유행처럼 오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씨앗을 심고, 키우는 삶이 참 좋을 것 같다.

또 흙이 만지고 싶고, 식물이 크는 걸 보고 싶은 걸 보니 정말 봄이 왔나보다.

1년 내내 흙을 뺑뺑이 돌리지 않았지만,
봄여름에 열심히 키워주고, 겨울엔 좀 쉬었을테니,
올해 봄에도 좀 부탁해. 손바닥만하지만 나에겐 큰 텃밭아~ㅋㅋㅋ





러쉬 블랙팟을 러쉬 매장에 가져다줄까 작은 화분으로 써볼까 고민하다가,
블랙팟 바닥에 송곳으로 구멍을 쿵쿵 뚫어버렸다.
5,000원 날아갔네 ㅎㅎ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