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답답한 수열! 수학일러스트




독자를 위한 글쓰기,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기분대로, 책읽음



콜린 퍼스(맥스 퍼킨스), 주드 로(토머스 하디) 주연의 '지니어스'에서는 위대한 작가와 천재 편집자의 관계가 나타난다. 작가가 본인의 인생, 사상과 심연을 마구 뒤섞어 거창하고 방대한 작품을 써 내려가면, 편집자는 독자들이 작품을 아름답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절제시키고 내용을 축약한다. 그 과정에서 자아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작가가 있고, 자아가 아닌 작품을 다룬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회자시키는 편집자가 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협업을 통해 오랫동안 회자 될 작품을 완성한다.

"퍼킨스는 나를 그의 창작품이라고 여겨.
날 불구자로 만들었어.
내 작품을 변형시켰다고!"

작품을 구성하는 내용과 표현이 가지치기 당하는 모습을 작가는 감내하기 힘들었다. '심연의 고통을 끄집어 내서' 썼던 글이 버려지고 허공으로 사라져야 했으니까. 마음 속으로 수없이 외쳤을 거다. '내 글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하냐'고.

토머스 하디처럼 심연에서 끌어올린 글을 쓰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슬슬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다른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라서 글을 쓰는 것인지. 자기 만족을 위해 쓰는 글이라면, 다른 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후자의 목적이라면, 글의 심미성이나 유익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월하게 읽히는 글을 우선 쓸 수 있어야 한다. 토머스 하디의 절규를 비슷하게 내뱉기 전에, 스스로 쓴 글을 다듬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규칙에 맞는' 글을 쓴다기 보다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글을 써야 한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빠르고 쉽게 쓰려 하다보면 문제가 생기고, 중의적 표현이 나타난다. 주어가 말하게 하지 않고, 작가가 문장에 개입해서 말하다 보면 문장이 어지러워진다. 본인만의 개성있는 작법 스타일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읽는 사람을 배제하고 쓰는 글은 절대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풍부하고 유익한 내용을 담은 글이라도 독자가 읽기 힘든 텍스트거나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책임은 언제든지 작가에게 돌아갈 수 있다.

‘글’은 항상 읽는 독자를 배려해서 써야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고자 마음을 연 사람들이지 않은가. 마음 열고 한 자, 한 자 읽기 시작한 사람들을 백 번, 천 번 배려해야 한다.


# 책 속의 하이라이트
- 좋은 문장은 주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 한 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다.
-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 문장을 통해서 쿨해질 수 있는 건 글쓴이가 아니라 주어와 술어일 뿐이다.
- 억지로 명사형을 만들어 쓰는 것이 우리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 말하자면 주격 조가 '이, 가'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가 '은, 는'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음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모든 동사가 당하는 말과 시키는 말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 지시 대명사는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그, 이, 저' 따위를 붙이는 순간 문장은 마치 화살표처럼 어딘가를 향해 몸을 틀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이, 저'가 한 문단에 섞여 쓰이면 문장은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 글을 쓰는 자리가 곧 기준점이라고 생각해서 빚어지는 실수들이다. 문장의 기준점은 문장 안에 있지 문장 밖 글쓴이의 자리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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